걷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보입니다
멀리서 아는 사람이 걸어오는데 얼굴이 안 보여도 오늘 기분이 안 좋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깨가 처졌거나,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거나, 팔이 안 흔들리거나 해서입니다. 우리는 그걸 배운 적이 없는데도 알아봅니다.
3D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 표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걸음걸이가 밋밋하면 감정이 안 실립니다. 반대로 걸음만 제대로 잡아도 표정 없이 감정이 읽힙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기분만 바꿔서 걷는 자료를 모아 봤습니다. 무엇이 실제로 달라지는지 재 봤더니 생각보다 명확했습니다.
먼저 기준이 되는 걸음
특별할 게 없는 걸음입니다. 상체가 곧게 서 있고 팔이 자연스럽게 흔들립니다. 이걸 기준으로 두면 다른 걸음이 무엇을 바꿨는지 보입니다.
화가 나면 빨라지고 앞으로 기웁니다
재 보니 상체가 앞으로 13.9도 기울어 있었습니다. 평범한 걸음이 2.9도니까 다섯 배 가까이 굽은 셈입니다.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보통 초당 1.5걸음인데 화난 걸음은 초당 3.9걸음입니다. 두 배가 넘습니다. 몸을 앞으로 던지듯 걷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빨라집니다.
우울하면 고개가 먼저 떨어집니다
화난 걸음과 우울한 걸음은 둘 다 상체가 앞으로 기웁니다. 화난 쪽이 13.9도, 우울한 쪽이 11.2도로 비슷합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은 절대 헷갈리지 않습니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걸음은 초당 1.7걸음으로 평범한 걸음과 비슷하게 느립니다. 앞으로 기울었는데 느리면 지쳐 보이고, 앞으로 기울었는데 빠르면 화나 보입니다.
당당하면 등이 펴집니다
당당한 걸음의 상체 기울기는 3.7도였습니다. 평범한 걸음(2.9도)보다도 거의 곧습니다. 대신 발걸음이 초당 2.4걸음으로 조금 빠릅니다.
즉 당당함은 무언가를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굽히는 것이었습니다. 자세를 곧게 유지하면서 걸음에 일정한 박자를 주면 그렇게 보입니다.
가장 크게 벌어진 건 노인 걸음이었습니다
상체가 28.1도 굽어 있었습니다. 평범한 걸음의 열 배에 가깝습니다.
보폭도 크게 줄었습니다. 다리 길이를 1로 놓았을 때 평범한 걸음이 1.29인데 이쪽은 0.38입니다. 한 걸음이 3분의 1로 짧아진 것입니다. 발을 크게 못 내딛으니 자연히 느려집니다.
서두름은 팔에서 드러납니다
발걸음이 초당 4.7걸음으로 가장 빨랐고, 팔 흔들기 폭도 가장 컸습니다. 급하면 팔로 반동을 만들어 몸을 앞으로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규칙이 보입니다. 감정은 자세·속도·팔 이 셋의 조합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만 바꾸면 어색하고, 셋이 같이 움직여야 자연스럽습니다.
사람이 아닌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좀비 걸음은 초당 1.1걸음으로 가장 느렸습니다. 노인 걸음보다도 느립니다. 팔을 앞으로 고정한 자세와 그 느린 박자가 합쳐져서 사람이 아닌 느낌을 만듭니다.
로봇은 반대로 안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사람이 걸을 때는 몸통이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리는데, 그걸 없애면 기계처럼 보입니다.
정리하면
걸음으로 감정을 만들 때 볼 것은 셋입니다.
- 상체 기울기. 곧으면 당당하고 굽으면 지치거나 늙어 보입니다. 2.9도에서 28.1도까지 벌어집니다
- 발걸음 속도. 초당 1.1걸음에서 4.7걸음까지. 기울기가 같아도 속도가 다르면 다른 감정이 됩니다
- 팔 흔들기. 클수록 급하거나 활기차고, 작을수록 가라앉아 보입니다
얼굴을 만지기 전에 이 셋부터 보시면 훨씬 빨리 감정이 실립니다.
여기 쓴 걸음들은 artoke.com 에서 직접 돌려보고 캐릭터를 바꿔가며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정 걷기 말고도 달리기, 회피, 피격 같은 동작이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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